아직 그리지 못 한 풍경
걷기좋은 전나무 숲 【국립공원 오대산 월정사】 본문
아직 새벽도 오지않은 한밤중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 어디니 ?"
" 아직 집인데 "
" 출발 안해 ? "
" 넌 어딘데 ? "
" 지금 출발 하려고 "
요즘은 그렇게 새벽잠에서 일나기가 쉽지 않았다.
천근 만근 무거운 몸을 이끌고 욕실에 들어가 정신이 번쩍 들기를 바라며 차디찬 냉수를 머리에 쏟아 붓었다.
주섬 주섬 옷을 챙겨 입고 친구와 만나 어두움이 가시지 않은 영동 고속도로를 달려 횡성 휴게소에서 아침 식사를 마쳤다.
횡성 휴게소를 나서 동쪽으로 향하니 능선 넘어 해돋이가 시작되었다.
영동고속도로를 달려 횡계IC를 나서 월정 사거리에서 조금 더 오대산 방향으로 오르면 월정사의 일주문을 만난다.
아침 햇살이 푸른안개를 끌어안고 잠든 오대산 기슭을 깨워 전나무가지 사이 사이
그 빛이 쏟아져 내려 신비감이 감돌았다.
여기서부터 오대산을 여는 월정사가 시작되는 곳이다.
하늘을 찌를듯 쭉쭉 뻗은 전나무의 호탕하고 장쾌한 모습이 아침 햇살을 빨아들여 아침이 밝아왔다.
일주문에서 시작되는 월정사 전나무 숲 길은 약 1km가 조금 넘는 거리에 잘 다듬어진 황토길로 깊은 산중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 한
청량감이 오대산 월정계곡을 따라 형성되어 있다 .
이곳을 걷노라면 산중의 고요한 묵시록을 맛볼 수 있다.
아침부터 먹이를 찾아나선 산새들이 분주하게 햇살이 쏟아진 숲을 무대로 분주하다.
겨우내 쌓였던 눈이 차가운 냉기를 품고 황토길 위를 쩡쩡하게 포장해 놓고 아침부터 손님 맞이를 한다.
아이들이 신나는 웃음소리와 함께 아침 햇살을 가르며 달려가는 소리가 청량한 숲에 공명이 되어 울려 퍼지고
커다랗고 높다란 전무를 감상하며 숲에 취해 조근 조근 걷다보면 월정사의 천왕문이 눈에 들어 온다.
이른 아침 템플스테이를 나선 학생들이 수양길에 나서 도량수업이 한창이다.
고요한 선(禪)을 수행하며 산사의 청량함으로 마음을 씻어 내리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 지는 듯하다.
사천왕문에 들어서면 깔끔한 단청의 월정사가 금강문을 앞세워 오대산 자락을 깔고앉아 고요한 산사의 풍경을 안겨 준다.
월정사는 말끔한 단청에서 그 세월을 느낄수 없으나, 사찰의 연사는 매우 오래된 사찰이다.
선덕여왕 12년인 643년 당나라에서 수도를 마친 자장율사가 부처님의 석존사리를 모시고 돌아와 오대산 비로봉 아래
석가모니의 정골사리를 봉안하고 적멸보궁을 창건하였다.
그 후 2년 뒤 동대 만월산 아래 월정사를 세우고 경내에 팔각 구층석탑을 건립하여 그 안에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했다는 기록을 1752년 이휘진은 월정사 중건 사적비에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기록으로 월정사의 팔각구층석탑은 고려초기의 양식을 갖추고 있다.
월정사는 조선중기 철종7년(1856)에 크게 중건되었다가 한국전쟁으로 전소 되었다.
한국전쟁시 당시 오대산 일대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요충지로 월정사와 상원사는 인민군의 거점이 되었다.
때문에 유엔군의 개입으로 북진을 하던 때 미군은 월정사와 상원사를 소각하기에 이른다.
하여 소각명령을 받은 군인들은 월정사를 모두 불태우고 상원사에 이르니 노스님 혼자 절을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군인들은 노스님을 끌어내고 불을 놓으려 했지만 스님은 "차라리 이법당과 함께 불에 타서 소신(燒身)을 공양하겠노라"며 끔쩍도 하지 않았다.
스님의 굳은 의지에 감복한 군인들은 그냥 철수하려 했지만 상부에서 절을 불태우라는 명령을 거절할수 없어
문짝만 떼어내어 불사르고 마치 절이 불타는 것 처럼 위장 하였다고 전해지는데 이 이야기는 방한암 스님이
상원사를 지킨 이야기로 유명한 일화이다.
한국전쟁 당시 월정사의 피해는 처참하였는데 모든 건물은 모두 불에 타버린것은 물론이고, 양양의 선림원지에서 출토되어
월정사로 옮겨진 신라시대의 범종이 완전히 녹아버렸다.
이 범종은 804년에 제작된것으로 제작연대가 확실하고 상원사의 상덕대왕신종과 견줄 만큼 뛰어난 예술성을 지닌
작품이였다고 하니 정말 애석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적광전 앞 마당 중앙에 서있는 팔각구층석탑은 월정사에서 가장 손꼽히는 문화재로 국보 제48호이다.
월정사 중건 사전비의 기록에 의하면 이탑은 자장율사가 건립하였다고 전하지만 고려양식의 팔각구층석탑은 방형 중심의 삼층 또는 오층
탑이 대부분이였던 신라시대의 석탑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러한 기록에도 불구하고 고려시대의 탑으로 추정하는 이유는 다각다층석탑은 고려시대 들어와 보편적으로 제작되었으며,
하층 기단의 안상과 연화문이 조각되어 있고 상층 기단과 몸돌에 괴임돌이 끼워져 있기 때문이다.
만주를 비롯한 북방의 고구려 양식에 팔각다각형의 탑이 많으므로 그것을 계승한것이 아닌가 하는 견해도 있지만,
탑의 양식으로 보아 아무리 연대를 올려 잡아도 10세기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는 않을 듯 하다.
적광전에는 원래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것이 통례이나 월정사의 적광전에는 석굴암 대불형태를 그대로 본뜬
석가여래를 그대로 모시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월정사 건물의 주련과 현판은 모두 방한암 스님의 제자인 탄허 스님이 쓴 글씨체이다.
적광전 뒤 높은 동산에 올르면 월정사가 한눈에 들어 오는데 그리 넓지 않은 터여서 경내가 약간 비좁은 느낌을 준다.
오대산 골짜기 월정 계곡에서 불어온 한기가 경내를 뒤덮어 사람들은 양지를 찾았다.
월정사의 성적당에는 고드름이 산사의 겨울을 달래는 듯 주렁주렁 매달려 지나는이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아직은 이른 시간 한산한 경내를 돌아보고 상원사로 발길을 옮긴다.
'한국의 국립공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리산 구례 산수유 마을을 찾아서 (0) | 2012.03.31 |
---|---|
구례 오산의 사성암에서 (0) | 2012.03.30 |
바람을 안고 걸었던 제주 올레길 (18코스) (0) | 2012.01.19 |
설경속의 한라산 등산(성판악에서 관음사코스) (0) | 2012.01.17 |
거제 향교와 옥산성지(금성대) (0) | 2011.1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