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그리지 못 한 풍경
노인봉에서 명주청학동 소금강까지 【오대산 국립공원】 본문
아직 장마가 시작된 것도 아니고 장마가 끝난 것도 아닌데
여름으로 향하는 길목은 폭염으로 혹독하기만 하다 .
폭염이 쏟아지는 주말 백두대간의 황병산과 오대산의 허리를 지나는
청학동 소금강으로 트레킹을 떠났다.
주말의 당일 원거리 산행은 오히려 무박 산행보다 체력적으로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
새벽 잠을 설치고 자는 듯 마는 듯 일어나 대충 챙겨 놓은
배낭을 둘러메고 나서는 새벽 길은 아직 선선한 감이 돌았으나,
진고개 정상 탐방센터에 도착하니 땡볕이 기다리고 있었다.
진고개 정상에서 노인봉으로 향하는 길
작은 숲을 지나면 나오는 고원의 초원이 보이고
초지를 지나면 숲길의 오르막이 노인봉까지 이어진다.
숲이 우거진 오솔길을 걷는 동안은 햇볕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렇게 약 30여분 오르면 오대산의 노인봉 정상에 도착한다.
노인봉의 정상의 거대한 암릉으로 형성되어 있고 .
북으로는 오대산 비로봉과 남동방향으로는
백두대간의 황병산이 자리하고 있다 .
백두대간의 황병산과 오대산을 사이에 두고 맑은 폭포와
기암괴석이 아름다운 계곡 청학동 소금강 계곡을 따라
소금강 분소까지 트레킹을 하였다.
소금강은 우리나라 명승 1호로 옛날 명칭은 청학산이라 하였다가
율곡이이 선생께서 이곳을 유람하고 견문록인 "유청학산기"에서
금강산을 닮았다 하여 소금강이라 이름을 붙인데서
그 지명의 유래를 찾아 볼 수 있다.
노인봉에서 계곡을 따라 걷는 소금강 계곡은
울창한 숲길을 계곡에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는 길이다 .
가뭄이 심하다 하는데 도 이곳엔 제법 계곡물이
산객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연하소에 이르러 몸을 담그고 싶을 정도로
시원한 물속이 아쉬움을 더했지만 양반체면에
체면을 구길 수 없으니 점잔케 보행을 이어간다.
노인봉으로 가는 길목엔 고지대 답게
이제 막 찔레꽃이 몽우리를 터뜨리고 있었다.
그 옛날 강원도의 화전민들이 일궈 먹을 법한 초지엔
애기수영이 지천이고 초입에선 초롱꽃이 여름을 알리고 있었다.
▲ 꿀풀
▲ 금마타리
노인봉에서 강릉방향으로 소금강 분소까지 걷는 길은
다소 지루하다 . 끝없이 펼쳐지는 숲길이 시원하기는 하지만
가슴이 확 트이는 풍광은 찾아 볼 길이 없어서 일 것이다.
어느 해 가을 단풍이 들어 형형색색일 무렵 이곳을 찾곤
몇 년만에 여름의 문턱에서 소금강 트레킹을 하였다.
청학산을 유람하면서 글 : 율곡 이이
융경(隆慶) 기사년(1569)에 내가 벼슬을 그만 두고 강릉으로 조모님을 뵈러 갔다
마침 향리(鄕里) 사람들과 더불어 경치 좋은 천석(泉石)에 대하여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내가 말하기를, “대관령(大關嶺) 이동(以東)으로는 유람하는 이들이
으레 한송정(寒松亭)과 경포대(鏡浦臺)를 일컫는데, 이는 다 강해(江海)의 승경(勝景)일 뿐이다.
동천(洞天)과 계학(溪壑) 중에 고인(高人)이
서식(棲息)할만한 곳이 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
혹 있어도 내가 아직 보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였다.
박대유(朴大宥)가 옆에 있다가 말하기를, “내가 장 상사 여필(張上舍 汝弼)에게 들으니,
‘연곡현(連谷縣) 서쪽에 오대산(五臺山)으로부터 백여리를 뻗어내려 온 산이 있고
그 가운데 동학(洞壑)이 있어 매우 맑으며, 그 유심(幽深)한 곳에 청학(靑鶴)이 암봉(巖峯) 위에
깃들이고 있으니, 참으로 선경(仙境)이나 유람하는 사람이 많지 않으므로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자신도 모르게 심신이 시원하여졌다.
드디어 이 유심(幽深)한 곳을 찾아보기로 계획을 정하였다.
마침 권 표장(表丈:율곡의 서모가 권씨이므로 서외숙을 이름)의
정자가 해상에 있는데, 이름을 ‘무진(無盡)’이라 하였다.
외숙이 먼저 가서 서로 기다리기로 하고, 나와 아우
위(瑋) 계헌(季獻:율곡의 아우인 위의 자)은 뒤따라갔다.
때는 첫여름 4월 보름 하루 전이었다. 정자 아래는
긴 냇물이 옆으로 뻗쳐 바다로 들어가고 바다 입구에는
암석이 많아서 낚시터가 될 만하였다.
외숙이 냇물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냇물의 근원이 오대산 북대(北臺)에서 나왔는데
그 흐름을 따라 들어가면 학소(鶴巢:학의 둥지)를 볼 수 있다고 향인들은 말한다.”고 하였다.
황혼에 배를 띄었는데, 장여필 중린(張汝弼仲鄰)도 함께 참여하였다.
흰 모래는 바다를 막고 있으며 달빛은 낮과 같았고,
바람은 그치고 물결은 고요했다. 노를 저어 중류에 이르러 술을 들고 달을 향하여
서로 마시고 깊어서야 정사로 돌아왔다.
그 이튿날에 표장 및 나와 계헌과 중린이 고삐를 연이어
백운천(白雲遷)을 지나 토곡(兎谷) 입구에 당도하니,
길가 암석 위로 흐르는 물에 나무 그늘이 덮여 있었다.
말에서 내려 쉬는데, 계곡 위에는 초옥(草屋)을 얽을 만한 언덕이 있었다.
내가 외숙을 보고 말하기를, “만약 몇 칸의 모옥(茅屋)을 이 언덕 위에 지으면
은거(隱居)할 곳이 될 만하다.”고 하였다.
우리가 암석에 의지하여 물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를 세면서
한참 동안 머물러 있는데, 박대유(朴大宥)가 말을 몰아 뒤쫓아 이르렀다.
동복(童僕)을 시켜 삭정이를 주워 모래 위에서 밥을 지어 먹었다.
우인(虞人:옛날에 산림 등을 관리 하던 사람)을 만나 길을 묻고 그를 전도(前導)로 삼아
곡연(曲淵)에 이르니, 절벽이 갈라진 곳에 거센 물이 쏟아져 내려 빙 돌아 못을 이루었는데,
물빛이 검푸르렀다.
바위 곁을 굽어보니, 늠연(凜然)히 정신이 오싹하였다.
다시 두 고개를 넘어 30요 리쯤 걸어가니, 한 고개가 대단히 높고
길가의 수석(水石)이 깊이 들어갈수록 더욱 기이하여,
눈이 어지러워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었다.
대개 토곡(兎谷)에서부터 서쪽으로 오면서 하늘의 조화가 점차 교묘한 솜씨를 보여서
학소암(鶴巢巖)을 형성할 바탕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고개 밑에 펼쳐진 편편한 들판은 사방 3~4리쯤 되어 보였다.
여러 봉우리는 푸른빛으로 싸이고 한 시내에 푸른빛이 둘렀으며,
한랭(寒冷)한 바위가 뻗어나고 큰 나무들이 무성한 가운데 한 채의
초옥(草屋)이 있는데 울타리가 쓸쓸하여 마치 은자(隱者)의 집과 같았고,
통나무를 쪼개 홈통을 만들어 물을 받아서 물방아를 만들었다.
우리는 두루 배회하며 둘러보는 사이에 세속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시 걸어서 5리 남짓한 곳에 이르러 승사(僧舍)를 찾아 쉬었는데,
판옥(板屋:판자로 이은 집)이 매우 따뜻하였다. 노승(老僧)이 숲 사이로 보이는
작은 길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저 길로부터 수십 보를 가면 한 아름다운 곳이 있다.” 하였다.
우리들이 그 노승을 따라 가보니, 과연 푸른 낭떠러지가 오이(瓜)를 깎아 세운 듯하고
날아 떨어지는 천류(泉流)가 백설(白雪)을 뿜어내었다.
암석 위에 소요(逍遙:고요히 왔다 갔다 함)하며 외로운 소나무를 어루만지다가,
해가 지고 어둠이 깔려서야 승사로 돌아와서 그 못을 ‘창운(漲雲)’이라 이름 하였다.
중 지정(智正)이 산길에 익숙하다 하기에 그를 불러 그 상황을 물어 보았더니,
지정이 말하기를, “여기서부터 서쪽으로 4리쯤 가면
조도(鳥道:새라야 지나갈 수 있을 만한 험한 길)가 있어 그 이름을 ‘관음천(觀音遷)’이라 하고
그 서쪽에 석문(石門)이 있으며 석문 안에 식당암(食堂巖)이 있고
식당암 서쪽에 산성(山城)이 있어 성가퀴(雉堞)가 지금도 완연하다.
다시 5리쯤 가니 석봉(石峯)이 우뚝 솟았다.
그 중에 구소(九霄:하늘의 제일 높은 곳)에 닿을 만한 봉우리가 무릇 셋으로
운벽(雲壁:구름이 벽을 이룬 산)이 둘렀고 설색(雪色:역시 눈빛과 같은 산을 이름)이 험준한데,
맑은 물이 그 사이에서 쏟아지고 있으며,
그 봉우리 위에는 청학소(靑鶴巢:청학의 둥지)가 있으나
석잔(石棧:돌로 된 잔도)이 매우 위태로워 한번 헛디디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 이튿날 아침에 우리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짚신에 지팡이를 짚고 나섰다.
지정(智正)이 우인(虞人)과 함께 길을 인도하였다.
산길이 잡초로 막힌데다가 낙엽이 덮여 분간할 수 없으므로
냇물을 따라 돌을 밟아가는 길이 더없이 험난하였다.
걸어간 지 얼마 안 되어 기이한 봉우리와 첩첩이 쌓인 돌이 있어
그 기상(氣象)이 매우 특이하였다.
한 가닥의 작은 길을 찾아 멧부리를 돌아 나무를 더위잡고 올라가 바라보니,
구름에 쌓인 멧부리는 아득하고 임목(林木)에 덮인 산학(山壑)이 깊숙하며,
거세게 흐르는 계곡 물이 옥을 부딪치는 소리를 내어 숨을락 보일락 하므로,
동부(洞府)가 얼마나 조용하고 깊숙한지 알 수 없으며,
또 그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알 길이 없다. 우인이 말하기를, “이는 관음천(觀音遷)의
제 1암(第一巖)이다.
봉우리 도는 곳에 길이 끊기고 푸르른 벼랑이 앞에 닿는데,
그 벼랑의 중턱을 따라 지나 내려가면 깊은 못이 있다.”고 하였다.
나와 계헌이 기어서 겨우 건너가는데, 대유가 먼저 가서 뒤돌아보고 웃는다.
멧부리를 내려와 석문에 이르니, 둥근 바위가 돌 언저리에 걸쳐 있고,
바위 아래에는 구멍이 나 있었다. 겨우 머리를 숙이고 걸어서 석문을 들어서니,
그 경색(境色)이 더욱 기이하여 황연(慌然)히 딴 세계였다.
사방을 두루 돌아보니, 모두 석산(石山)이 솟아 있고 푸른 잣나무와 키 작은 소나무가
그 틈바구니를 누비고 있었다. 석산이 양쪽으로 병풍처럼 둘러쳐진 가운데 냇물의 근원이
매우 먼데, 수세(水勢)가 거센 곳에 폭포를 이루어 맑은 하늘에 천둥소리가 계곡을 뒤흔드는 듯하고
고인 곳에는 못이 되어 차가운 겨울에 얼이 없는 듯한가 하면,
깊고 맑고 아름답고 푸르러 낙엽이 붙지 못하고 휘돌아 흐르는 구비마다
암석 모양이 천변만화(千變萬化)하고 산그늘과 나무 그림자에
이내가 섞여 어스레하여 햇빛이 보이지 않았다.
흰 돌 위를 거닐며 잔잔한 물살을 완상(玩賞)하면서 좋은 자리를 고르려 하였으나
그 요령을 얻지 못하고 여러 번 자리를 옮기다가 최후에 한 바위를 발견하였는데
편편하고 넓으며 층계가 있었다.
일행이 그 위에 앉아서 간단한 술자리를 베풀었다.
정서(正西)에 있는 한 봉우리를 우러러보니, 가장 높고 모양이 특이하기에
이름을 ‘촉운봉(矗雲峯)’이라 하고 , 이 바위의 이름을 옛적에 식당암(食堂巖)이라 하였던 것을
고쳐 ‘비선암(祕仙巖)’이라 하며, 동부(洞府)의 이름을 ‘천유(天遊)’라 하고, 바위 아래
있는 못을 ‘경담(鏡潭)’이라 하며, 산 전체를 ‘청학산(靑鶴山)’이라 이름 하였다.
우리들이 산성(山城)을 답사하여 학소(鶴巢)를 탐방하려 하였으나
마침 비가 올 기미가 있으므로 산길이 더욱 험해질까 염려되어 섭섭하였으나
그만 중지하고 돌아오는 길을 찾는데 열 걸음에 아홉 번은 돌아보았다.
나는 대유와 더불어 이 다음의 청유(淸遊)를 약속하였다. 승사(僧舍)와의 거리를 50여 보쯤 두고,
시내 위 반타석(盤陀石:평평하지 않은 바위)에 앉아 점심을 지어먹었다.
산을 나와 토곡(兎谷)에 이르니, 권신 근중(權愼謹仲)이 술을 가지고
길가의 층암(層巖:층을 이룬 바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바위 옆에는 한 길 가량 되는 폭포가 드리워졌다.
이 바위에 앉아 술잔을 나누며 이름을 ‘취선암(醉仙巖)’이라 하였다.
저녁이 되어서야 무진정(無盡亭)으로 돌아왔다.
아! 천지가 있은 뒤로 이 산이 있었을 것이고,
천지의 개벽이 이미 오래되었는데도 이 산은 아직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산성(山城)의 구축이 어느 시대에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아마 이를 처음 구축한 자는
피란(避亂)을 위한 관리나 백성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유인(幽人)이나 일사(逸士)가 한번 이 석문을 찾아왔었다면
어찌 한 마디의 말도 후세에 남겨 놓은 것이 없겠는가?
아니면 혹 그러한 사람이 있었어도 이미 실전(失傳)되어버린 것일까?
저 오대산이나 두타산(頭陀山) 등은 여기에 비유하면 그 품격이 낮은데도 오히려
이름을 떨치고 아름다움을 전파하여 관람하는 자가 끊이지 않는데,
이 산은 중첩된 봉우리와 동학(洞壑) 속에 그 광채를 감추고 빛을 숨겨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니, 하물며 그 웅숭깊은 곳이랴.
세상 사람들이 알거나 모르거나 하는 것이 산에 있어선 아무런
손익(損益)이 없지만 돌아보건대 물리(物理)란 본시 그렇지 않다.
하루아침에 우리들을 만나서 후세 사람이 이 산이 있는 줄을 알게 되었으니,
이 또한 운수인 것이다. 또 이외에도 신령스러운 곳이 세속 밖에 비장되어 있어
이 산보다 더 기이한데,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 세상에 지기(知己)를 만나고 만나지 못하는 것이 어찌 산뿐이겠는가?
▲ 장지뱀 ( 국산 도마뱀 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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