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그리지 못 한 풍경
정월대보름 달맞이 달집태우기(고양진밭마을에서) 본문
정월 대보름
정월 대보름은 절기상으로 농사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상원(上元)이라고도 불렀으며 이날의 모든 행사는 농경사회의 풍습의 엿볼수있는 놀이와 행사가 진행된다.
정월대보름 하면 휘영청 둥근달을 연상하게 되는데 달은 예로부터 음에 해당하여 여성으로 보았다.
달은 여신, 땅으로 표상되며 여신은 만물을 낳는 지모신으로 출산하는 힘을 가졌다고 여겼다.
그래서 농경사회에서는 풍년을 기원하는 존재로 풍요로움의 상징이었다.
때문에 대보름 저녁을 먹고 뒷동산에 올라 달맞이를 하며 한해의 소원을 기원하기도 했다.
우리의 선조들은 대보름을 설, 추석과 더불어 같은 중요한 명절로 여겼다.
지방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개 대보름날 자정을 전후로 마을의 평안을 비는 마을 제사를 지냈다.
전남 해남의 도둑잡이굿, 전남 완도 장보고당제, 전남 보성 벌교갯제, 충남 연기 전의장승제, 전북 고창 오거리당산제, 경북 안동 도산부인당제, 경북 안동 마령동별신제, 강원도 삼천 억던 남근제, 전북 김제 마현당제가 있다.
대보름날에는 오곡밥을 지어 먹고, 아침일찍 눈을 뜨자마자 처음 보는 사람에게 더위를 팔고, 부럼을 깨문다.
그리하면 한해동안 부스럼이 생기지 않고 더위도 타지 않는다는 말이 전해저 내려온다.
어린시절 정월 대보름 전날밤은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된다고 하여 어른들이 잠을 못자게 했었다,
그러다 잠이 든 아이에게는 눈썹에 밀가루를 묻쳐두어 하얀 눈썹을 만들어주고 하는 장난을 하였다.
잠을 자면 눈썹 희어진다는 '수세(守歲)' 속신
과거 조상들은 설날을 섣달그믐날(음력 12월 31일) 밤과 정월초하루(음력 1월 1일)가 직결돼 있다고 여겨 섣달 그믐날 밤에는 잠을 자지 않았다.
이를 수세(守歲)라 하는데 잠을 자면 눈썹이 희어진다는 속신을 믿었기 때문이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상원조에는 '이날 온 집안에 등잔불을 켜 놓고 밤을 새우고 마치 섣달 그믐날 수세(守歲)하는 예와 같다'고 적고 있다. 원래 달은 음(陰)으로 달-여성-대지 등을 상징함으로써 풍요기원의 원리를 형성하고 있다. 이를테면 만월(滿月) 때에 여신에게 대지의 다산 또는 풍요를 기원하는 것이다.
정월 대보름 날에는 아홉가지의 나물과 오곡밥 아홉그릇을 먹고 나무 아홉짐을 해야한다라는 말이 전해진다.
이는 '9'라는 숫자가 가지는 의미 때문이다.
'10'이라는 숫자가 수의 완성이라고 하면 '9'라는 숫자는 10이란 숫자를 완성하는 절정의 숫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조상들의 아홉수를 중요시 했는지도 모른다.
구척장신(九尺長身), 구우일모(九牛一毛), 구사일생(九死一生)에서 보듯 선조들은 많다는 뜻과 어려움의 의미로 9를 썼다
정월대보름 놀이와 행사
보름새기
설날과 같이 수세하는 풍습이 있어 온 집안의 등불을 켜놓고 지새웠다. 보름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희어진다고 하였는데,
가족 중에 누군가 잠이 들면 장난삼아 밀가루 등으로 눈썹을 하얗게 칠해놓기도 한다.
더위팔기
보름날 해뜨기 전에는 다른 사람에게 한해 더위를 판다.
달맞이
초저녁에 횃불을 들고 높은 곳에 올라 달을 맞으면서 새해의 풍년을 점치고 행운을 빈다.
달집태우기
달집을 만들어 달이 떠오를 때에 태우면서 풍년을 빈다.
다리밟기
땅에 놓인 '다리'를 밟으면 밟는 사람의 '다리'가 튼튼해진다고 기대하며 다리를 밟는 풍습이다.
지신밟기
영남지방의 대보름 문화로, 농민들이 행렬을 이루어 집을 차례로 찾아가는 풍습이다.
액막이 연 날리기
그해의 액운을 멀리 날려 보낸다는 뜻으로 음력정월 열나흗 날에 띄워 보내는 연.
연에는 이름, 생년월일 따위와 송액영복(送厄迎福)과 같은 글귀를 쓴다.
대보름날 금기사항
1. 대보름 날 오전에는 마당을 쓸지 않는다.
오전에 마당을 쓸면 한해의 복이 다 나간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마당은 해가 중천에 솟은 다음에 쓸고, 비질도 마당 안쪽을 향하게 쓸었다고 한다. 심지어 쓰레기도 집 밖으로 버리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2. 머리 빗질을 하지 않는다.
대보름날 머리를 빗으면 일 년 내내 머리에 비듬과 이가 많이 생길 뿐만 아니라 콩밭에 새삼이 무성하게 자라 밭농사를 망치고 집안에는 곰팡이가 쓸고 뱀이 들끓는다는 속신이 있었다. 특히 비가 올 때 머리를 빗으면 부모상을 당한다고 여겨 매우 삼가 주의했다고 한다.
3. 빨래를 하지 않아야 한다.
대보름날 빨래를 하면 나락이 병충해로 인해 하얗게 변하고 다 말라 버린다고 여겼고 빨래를 널면 논에서 황새가 놀아 논농사를 망친다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옥수수 밭의 지질도 변한고 여겼다.
4. 맨발로 걷지 않아야 한다.
맨발로 걸으면 발가락이 트고 무좀이 생기며, 그 해에 짐승에게 물린다고 여겼다. 또한 농사철 발에 가시가 박힌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대보름날엔 반드시 양말을 신고 다녔다고 하며 잠을 잘 때에도 버선이나 양말을 신고 잠들었다고 한다.
5. 비린 음식을 먹지 않아야 한다.
조상들은 비린음식을 먹으면 더위가 찾아 왔을 때 병에 쉽게 걸린다고 생각했다. 여름에 파리가 들끓고 몸에 부스럼이 생긴다는 속신 때문에 비린 생선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어린시절 정월대보름날이 되면 아련히 떠어르는 추억들
분유깡통을 주워와 분유깡통속에 통나무를 넣고 못과 망치를 이용해 바람이 잘 통하도록 구멍을 내어
잘 마른 갈잎을 맨 아래 넣어 불을 붙이고 돌리면 불쏘시개가 만들어 진다.
이때 마른 나뭇가지를 채워 넣고 신나라 돌리면
잠시 연기가 피어나고 이내 불꽃이 피어 오르던 깡통 돌리기
동네 아이들과 하루동일 논두렁 밭누렁을 돌며 둥근달이 떠오를 때까지 깡통을 돌리고 다녔다.
그리 시장끼가 돌면 커다란 양동이를 준비하여 깡통을 두드리며 각설이 타령을 부르며 집집마다 대문을 걷어차면 인심좋은 동내 아주머니들은
찰진 오곡밥과 나물을 한그릇 내어주곤 했다.
그렇게 몇집을 돌고나면 양동이에 밥과 나물이 가득차고 이렇게 얻어진 오곡밥과 나물을 가지고 동내 아이들이 모두 모여 저녁을 해결했다.
이때 어른들은 성씨가 다른 세집을 돌아 밥을 얻어야 된다고 했던것 같은데 이 이유는 왜 인지 잘 모른다.
그렇게 배를 채우곤 달이 중천에 이르러서야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가고 마을 공터엔 꺼져가는 달집에 연기가 모락 모락 피어나 마을에
안개가 깔리듯 깔리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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