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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가을빛에 물들어가는 남한산성

緣佑(연우) 2012. 9. 27. 11:15

 

 

 

 

한 낮의 그림자가 날이 갈수록 길게 드리워져 간다.

어떤이는 들녘에 오곡이 익어가는 소리에 요즘은 밤잠을 설친다 한다.

어느새 이렇게 가을빛이 짙게 물들어 가고 있다.

큰아이가 고3 막바지의 비지땀을 흘리고 요즘은 이곳 저곳 대학문을 두드리며 수시시험에 한창이다.

큰 아이가 수시시험을 치르러 가는 날  학교 앞까지 태워 달라는 아들의 부탁에 이른 아침 눈을 떳다. 

아침 6시10분 큰아이가 시험보러 갈 준비를 마치고 영은이도 오빠를 태워다 주고 나들이나 하자며 주섬 주섬 옷을 챙겨 입고

따라나서는 아침이다 .

달리는 차안에서 맞이하는 바람이 차겁다 .

큰애를 학교에 내려주고 우리는 남한산성에서 가볍게 트레킹을 하자며 남한산성으로 향했다.

청명하게 맑은 하늘

이른아침의 투명한 햇살이 대지를 깨우며 내리 쬐였다.

간단히 먹을 물한병과 집에서 준비해온 삼각김밥을 들고 산성에 오르기 시작했다.

조금씩 조금씩 형형색색으로 저마다의  가을 옷을 갈아입을 준비를 끝낸 나무들과 어느새 커다랗게 입을 벌려

탐스런 알밤을 쏟아내는 밤나무에서 완연한 가을이 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영은이는 남한 산성에 오르며  나름 익숙한  나무 이름과 들꽃의 이름을 부르며 산성에 올랐다.

"노랑괴불, 여귀, 참취, 쪽동백, 떼죽나무....  혼자서 중얼거리 듯 잎새도 따보고 깨알같이 피어난 들꽃을 한참동안 들여다 보기도 한다.

촉촉한 이슬방울이 맺힌 꽃망울에도 가을이 짙어간다.

한참을 오르다 영은이는 다리가 아프다며

" 오늘은 조금만 걷고 그만 내려가면 안돼? "

다소 짜증이 섞인 볼맨 소리를 낸다.

" 그래도 수어장대는 보고 가야지 ? 조금만 가면 되는데  " 

그렇게 다리가 아프다는 아이를 달래 수어장대만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

마지막 푸르름을 자랑하는 나무들 사이 사이 햇볕이 담긴다.

 

 

 

 

 

 

 

 

 

 

 

 

 

 

 

 

 

 

 

 

 

 

 

 

▲ 남한산성 행궁터

 

행궁이란 비상시 왕이 임시로 거쳐하며 지휘를 했던 곳으로 이곳 유물 발굴당시 통일신라시대의 초대형 기와장이 대량으로 발견되어

남한산성은 통일신라 이전부터 사람이 거주하였음 알수있다.

남한산성 행궁은 광해군 13년(1621) 후금의 침입에 대비하여 만든 건물로, 백제 및 신라 때 토성을 식성으로 고쳐 지은 것이다. 『남한지(南漢誌)』에 따르면 남한산성을 고쳐 쌓을 때 행궁과 관아, 창고를 세웠으며, 총무사 이서가 주관하고 목사 유림이 감독하였다 한다. 인조 4년(1626)에 완성한 행궁은 내행전인 상궐궁과 외행전인 하궐, 의정문, 내삼문을 갖추고 있으며, 행궁 동편에는 손님이 머무는 건물인 인화관(人和館)이 있다. 행궁지는 산성호텔 뒷편 구릉지대에 위치하고 있는데 건물은 없어지고 터만 남아 있었다. 건물터는 상중하 3단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상단은 상궐터, 중단과 하단은 하궐터로 추정된다. 현재 남한산성행궁지(상궐터)에는 상궐, 남행각, 북행각, 재덕당, 좌승당 등이 복원되었다. 남한산성 행궁은 북한산성 행궁, 화성 행궁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행궁 중 하나로, 기록으로 볼 때 북한산성 행궁보다 규모도 크고 왕이 실제로 머물렀다 한다. [자료 :문화재청]

 

 

 

 

 

 

 

 

 

 

 

 

 

 

 

 

 

▲ 노랑괴불이 피어난 오솔길을 따라 조근 조근 오르다 보면 가을 첫 인상을 발견한다.

 

 

 

 

 

 

 

 

 

 

▲  얼마 후 노오한 치마를 두를 은행나무 아래 딸아가 앉았다.

      하늘이 맑은 얼굴로 반기며 내려와 함께 자리 한다.

 

 

 

 

 

 

 

 

 

 

 

 

 

 

 

 

 

 

 

 

 

 

 

 

 

 

 

 

 

 

 

 

▲ 산밤 나무에선 아람이 제대로 벌어졌다.

 

 

 

 

 

 

 

 

 

 

 

 

 

 

 

 

 

 

 

 

 

 

 

 

 

 

 

 

 

 

 

 

 

 

 

 

 

 

 

 

 

 

 

 

 

 

 

 

 

 

 

 

 

 

 

 

 

 

 

 

 

 

 

 

 

 

 

 

 

 

 

 

 

 

 

 

 

 

 

 

 

 

 

 

 

 

 

 

 

 

 

 

 

 

 

 

 

 

 

 

 

 

 

 

 

 

 

 

 

 

 

 

 

 

 

 

 

 

 

 

 

 

 

 

 

 

 

 

 

 

 

 

 

 

 

 

 

 

 

 

 

 

 

 

 

 

 

 

 

 

 

 

▲ 수어장대

 

장대는 본래 전투시 지휘가 용이한 지점에 설치한 지휘소다.

현대와 달리 장군이 직접 전장을 관찰하며 지휘했던 당시에 지휘소의 역할을 하는 장대는 성내에서 가장 높고, 지휘와 관측이 용이한 곳에 설치하였다. 보통 한국의 성에서 장대는 단층 형태가 주류이나, 남한산성은 2층 누각형태다. 이와 같은 형태는 경기도 수원 화성에서도 확인된다.

남한산성은 넓어서 총 5개의 장대를 설치했는데, 18세기 중엽에 모두 붕괴되어 터만 남아있다. 1751년에 이기진이 영조의 명을 받아 서장대와 남장대를 2층 누각형태로 다시 세웠지만,

현재 남은 것은 서장대다.

 "수어장대"란 이름은 이 서장대를 가리키는 것으로 서장대의 편액을 수어장대라 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지금의 수어장대 건물은 1896년 유수 박기수가 재건한 것이다.

수어장대는 전면에서 볼 때 크고 작은 자연석을 이용하여 기둥을 세우고 내부에는 널마루를 설치하여 단조로운 난간을 둘렀다.

내부 천정에는 장반자를 귀틀 위에 깔아 단청으로 시문하였고 툇간 위의 반자는 연등천정이다.

내진과 외진 사이 바닥에는 전을 깔고 한쪽에 계단을 설치하여 2층으로 오르내리게 되어 있다.

2층은 1층과 달리 변주판문을 달아 열고 닫을수 있게 되어있고, 바닥에는 마루가 깔려있다.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수어장대의 목부에는 모로단청을 시문하여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 [ 자료: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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