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그리지 못 한 풍경

단양팔경 중 구담봉과 옥순봉을 오르다. 본문

한국의 국립공원

단양팔경 중 구담봉과 옥순봉을 오르다.

緣佑(연우) 2012. 4. 21. 08:30

 

▲ 장회나루 선착장 『왼쪽으로 보이는 것이 구담봉이다』

 

 

오전10시30분경 제천에 도착해 청풍문화재 단지를 돌아보고 점심식사를 마친 후 정방사를 돌아 장회나루에 도착했다.

구담봉과 옥순봉을 만나기 위해서 였다.

담양 팔경의 하나로  주변 금수산, 월악산, 제비봉, 옥순봉등 빼어난 경치때문에 옛날 이황,이이,김만중등과 같은 많은 학자와 시인묵객이 찾았다는 두 봉우리를

제대로 보기위해 우리는 장회나루에서 유람선을 타고 아래에서 그 빼어난 절경을 감상한 후 구담봉과 옥순봉에 오르기로 했다.

장회나루의 유람선은 수시로 운항하고 있으며 유람을 나선사람들이 많아 나루에서 30여분을 기다려야 했다.

유람선을 타고 만날수 있는 풍경은 제비봉을 시작으로 두향의 묘, 강선대,신성봉 등과 같은 절경을 만나게 된다.

푸른 충주호반의 물결을 가르고 만나는 풍경은 주변에 담긴  이야기을 알고 떠나면 더욱 재미있는 여행길이 될 듯 하다.

 

 

 

▲ 주변 답사여행을 위한 안내도 : 우리 일행은 1번에서 시작하여 2번 등산로를 따라 구담봉을 답사한 후 옥순봉에 올랐다.

                                                        날이  흐리고 황사가 조금 있어서 시야는 대체적으로 어두웠다.

 

 

 

 

 

 

▲ 충주호에서 바라본 구담봉

 

 

단양 8경중 하나인 구담봉은 깍아지른 봉우리 정상에 거북이 모양을 한 바위가 앉아있다고 하여 거북구(龜)자와 못담(潭)를 써서 구담봉이라 불리워 졌다.

조선 인조때 백의재상 ( 유생에서 단번에 정승에 오른사람) 주지번이란 사람이 양 봉우리에 칡넝쿨을 연결하여 타고 다녀 사람들은 그를 두고

신선이라 불렀다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여기서 주지번이란 사람은 조선사람이 아니라 중국 명나라의 문인이다.

주지번이 이곳에 내려와 여생을 보냈는지 정확한 자료는 없으나, 조선왕조실록의 기록과 표옹 송영구와 인연을 맺은 이야기는 그 전설속 이야기를 추정케 한다.

 

◎ 조선 시대 문인 표옹 송영구와 주지번의 인연 

송영구는 조선 선조때 문인으로 호는 표옹(: 바가지를 들고 다니는 늙은이, 재물을 멀리하겠다는 뜻)이다.

표옹은 임진왜란이 발생한 후 1593년 38세의 나이에 조선 사신단 송강 정철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북경에 도착하여 조선 사신관에 머무르던 어느날

우연히 부엌에서 불을 집히는 청년이 중얼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납루한 차림의 청년이 장자의 남화경을 읊조리고 있었다.

이에 놀란 표옹은 청년을 불러 그 기특함을 칭찬하며 사연을 들어본 즉, 중국 남월지방 출신의 주지번이란 자(者)인데 과거에 계속 낙방하고 노잣돈이 다 떨어져

호구지책(糊口之策)으로 허드레 일을 하고 있다 하였다.

표옹은 학문 수준이 상당한 자가 과거에 낙방한것이 아타까워 답안지를 어찌 작성했는지 물어 써보라 하니

주지번은 학문의 수준은 상당하나 전체적인 정리와 격식이 부족하다 생각된 표옹은 답안작성 요령을 알려주고 자신이 지니고 있넌 중요서적과  상당한 액수의

노잣돈까지 주며 뜻을 굽히지 말라 격려해 주었다.

훗날 주지번은 과거에 장원 급제하여 1606년 명나라 황제의 황태손이 탄생한 경사를 알리기 위한 공식 사절단의 최고 책임자인 정사(政使)의 신분으로

조선에 오자 선조는 교외까지 직접 나가 영접하였다고 조선왕조 실록에는 기록하고 있다.

외교사절단의 공식 업무를 마친 주지번은 스승인 표옹을 만나기 위해 전라도 익산까지 먼길을 마다않고 내려갔으나 표옹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표옹을 만나지 못한것을 아쉬워 하던 주지번은 표옹의 부친을 모신 망모당 현판이 낡은것을 보고 안스러워 이를 직접 써주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 옥순봉

 

 

옥순봉은 그 형태가 비가 오고난 뒤 희고 푸른 여러개의 봉우리가 마치 죽순이 돋아난듯 우쭉 솟았다고 하여 옥순봉이라 하였다고 전해지는데 이 이름은

퇴계 이황선생이 지은 것이라 한다.

퇴계가 1548년( 명조3년) 1월에  단양 군수로 부임하여 관기 두향과 함께 청풍(지금의 제천)군수에게 인사를 가던중 경관이 빼어나고 수려한

봉우리가 있어 그 이름을 물어보니 일행 중 아무도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퇴계는 그 자리에서 바위가 대나무 순처럼 돋아나 보인다고 해서 옥순봉(玉荀峰)이라 이름하였다 한다.

당시 청풍땅 이였던 옥순봉의  아름답고 수려함에 반한 관기 두향은 청풍부사와 퇴계이황의 연회자리에서 옥순봉을 단양에 속하여 줄것을 청하였으나

거절 당하고 돌아오는 길 퇴계는 옥순봉 바위에 단양 입구라는 뜻의 단구동문(丹口洞門)이라 새겨 놓았다는데

이때부터 옥순봉은 단양과 제천의 경계지점이 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퇴계선생의 성정속에 제법 사나운 고집과 심술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 후 청풍부사가 남에 땅에 경계를 정한자가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옥순봉에 이르러 필체를 보니 서체가 힘이 넘치고 생동감있는 이황의 필체임을 알고

이에 감탄하여 옥순봉을 단양에 내어 주어 한때  단양 땅이 되기도 하는데 이때에 이곳을 단양 팔경이라 하였던 모양이다.

 

◎ 퇴계 이황의 사랑과 두향의 절개

 

연회자리에서 퇴계선생은 두향의 청을 거절한 청풍부사에게 서운한 마음으로 옥순봉에 단구동문이란 글자를 새김으로써 두향을 생각하는 애틋한 마음을 엿 볼 수 있다.

퇴계선생이 단양군수로 부임 할 당시 선생은 첫째부인 김해 허씨가 27세의 나이로 사망하고  재혼한 둘째부인 안동 권씨도 46세의 나이로 사망하여 사별로 인한

단신의 몸으로 마음 둘곳 없는 퇴계선생은 늘 허전함이 가득했다.

그런 퇴계선생에게 시와 서화에 능하고 가야금 연주를 잘하는 꽃다운 나이 18세 두향은 벗이자 연민을 동반한 사랑의 시작이였다.

하지만 부임한지 9개월 만에 퇴계 이황의 형  이해가 충청감사로 부임하여 퇴계선생은 자청해 풍기 군수로 떠나게 되면서 두사람은 이별을 하게 된다.

퇴계선생이 떠나기 전날밤 두향에게 " 내일이면 떠난다. 기약없으니 두려울 뿐이다 "라고 전하니

두향은 퇴계선생에게 수석2개와 매화분재 한점을 이별 선물로 전해주며 시 한수로 답하였다고 한다.

 

" 이별이 하도 서러워 잔들고 슬피 울며

  어느덧 술 다하고 임 마져 가누나

  꽃 지고 새 우는 봄날을 어이 할까 하노라. "

 

퇴계선생이 떠난 뒤 두향은 간청하여 관기 신분을 벗어나 강선대 옆에 움박을 짓고 살다가 퇴계 선생이 1570년 12월 8일 안동에서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1571년 10월 퇴계선생의 별세 소식을 접한 두향은 죽은 뒤 자신을 평소 퇴계이황 선생과 자주 찾았던 강선대 옆에 묻어달라는 유훈을 남기고

강물에 뛰어들어 생을 마감하였다고 한다.

강선대 옆 두향의 묘가 충주땜 건설로 물에 잠길 위기에 처하자 퇴계의 후손들이 묘을 이장하고 매년 시월 절개를 지켜 순사한 두향의 묘를 찾아

벌초를 하고 시제를 올린다고 한다.

 

◎ 매화를 사랑하듯 애틋한 퇴계 선생의 두향을 향한 마음

 

퇴계선생은 평소 매화나무를 아끼고 좋아하였는데 이는 선비정신을 엿 볼 수도 있지만, 단양에서 두향과 이별할 때 두향이 선물로 준 매화분재를

늘 옆에 두었다고 전해진다.

퇴계선생이 69세에  노환으로 자신의 모습이 초췌해 죽음에 이르자 마지막 유언은 "매화 분재를 옆 방으로 옮기고  물을 줘라!" 하였다고 한다.

옥순봉에 오르니 퇴계선생과 두향의 애닮픈 사랑이 푸르른 강물로 녹아내려 흐르는 듯 했다.

 

 

 

 

▲김홍도의 병진년화첩 속의 옥순봉도

 

 

 

 

◎ 옥순봉의 수려함에 단원 김홍도 마음을 빼앗기다.

푸르른 충주호반의 물결을 방석삼아 깔고 앉아  병풍처럼 펼쳐진 기암괴석의 옥순봉은 단원 김홍도가 자주 찾았던 곳이기도 하다.

단원은 그 수려하게 빼어난 옥순봉을 병진년화첩에 그려 넣었는데 이는 단원이 정조의 초상화를 잘 그린 공로를 인정받아 1795년까지 연풍의 현감으로

재직할 당시 그린 작품으로 진경산수화의 한차원 더 앞당긴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 충주호에서 바라본 제비봉

 

 

 

 

 

 

▲ 신성봉

 

 

 

 

 

 

 

▲ 관기 두향의 묘

 

 

 

 

 

 

 

▲ 강선대

 

 

 

 

 

 

 

▲ 충주호에서 바라본 구담봉

 

 

 

 

 

 

 

▲ 흔들바위

 

 

 

 

 

 

 

 

▲ 구담봉의 거북바위

 

 

 

 

 

 

 

▲ 옥순봉의 촛대바위

 

 

 

 

 

 

 

 

▲ 충주호반

 

 

 

 

 

 

▲ 옥순대교

 

 

 

 

 

 

 

▲구담봉 가는길

 

 

 

 

 

 

▲ 생강나무 꽃

 

 

 

 

 

 

 

▲ 구담봉으로 향하는 길 머리위에서 나무 부스러기가 떨어져 위를 보니 청솔모가 낯선 이방인에게 텃세를 부리며 나무를 갉아 우리 일행의 머리 위로 던져 놓는다.

 

 

 

 

 

 

 

 

 

▲  능선 삼거리를 만나면 오른쪽은 구담봉 왼쪽은 옥순봉으로 향하는 길이다

       이곳은 단양과 제천의 경계지점으로 구담봉으로 가는 길은 왼쪽에 제천과 오른쪽 단양을 두고 걷게 된다.

 

 

 

 

 

 

 

 

 

▲ 구담봉 가는 길

 

 

 

 

 

 

 

 

 

▲ 구담봉 가는 길

 

 

 

 

 

 

 

 

 

 

 

 

 

 

 

 

 

 

 

▲ 구담봉에 이르러  왼쪽에 보이는 곳이 제비봉이다.

 

 

 

 

 

 

 

 

 

▲ 구담봉 가는 길  ▼

 

 

 

 

 

 

 

 

 

 

 

 

 

 

 

 

 

 

 

▲ 구담봉 정상에서 바라본 장회나루

 

 

 

 

 

 

 

 

 

 

 

 

 

 

 

 

 

 

 

 

▲ 구담봉으로 이르는 마지막 절벽코스

 

 

 

 

 

 

 

 

 

▲ 구담봉 정상의 소나무

 

 

 

 

 

 

 

 

 

▲ 구담봉 정상의 장회나루 풍경

 

 

 

 

 

 

 

 

 

 

▲ 구담봉 자락

 

 

 

 

 

 

 

 

 

 

 

 

 

 

 

 

 

 

 

 

 

 

 

 

 

 

 

 

 

 

 

 

 

 

 

 

 

 

▲ 구담봉 정상에서 바라본 금수산 풍경

 

 

 

 

 

 

 

 

 

▲ 금수산 정상 서쪽 풍경 ( 옥순대교 방향) : 정면 Y 형상의 옥순봉이 보인다.

 

 

 

 

 

 

 

 

 

 

 

 

 

 

 

 

 

 

 

▲ 구담봉에서 옥순봉 가는 길

 

 

 

 

 

 

 

 

 

 

 

 

 

 

 

 

 

 

 

▲   옥순봉 가는 길

 

 

 

 

 

 

 

 

▲ 옥순봉 정상

 

 

 

 

 

 

 

 

 

 

 

 

 

 

 

 

 

 

 

 

▲ 옥순봉 정상의 풍경 ▼

 

 

 

 

 

 

 

 

 

 

▲   옥순봉을 둘러보는 시간 해는 서산을 넘어간지 오래고 날은 어두어져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옥순봉을 답사하고 산을 내려오는 길 이미 날은 지고 어두움이 땅에 깔려 렌턴을 켜 들고 산을 내려왔다.

       구담봉을 돌아 옥순봉을 답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3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이 곳의 여행은 조금 더 여유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돌아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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