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그리지 못 한 풍경
백령도 그곳에서 본문
[ 최북단의 섬 백령도, 그곳에 가다 ]
2년전 부터 백령도를 가자고 계획을 했었다.
그런데 불운인지 ..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폭격으로 인하여 백령도 답사를 무기한 연기하고 있었다.
여행이란 늘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런던 중 우연한 기회에 친구들과 의기 투합이 되어 결국 계획을 실현할 기회가 주워 진것이다.
6월11일 토요일 우리는 백령도로 향하는 배에 승선하기 위해서 7시20분쯤 연안부두 여객 터미널에서 모였다.
멀미약을 챙겨 먹고 4시간 30분의 장시간 배에 승선 오후 12시40분쯤 백령도 용기포항에 도착했다.
[ 여행은 늘 설레임과 망설임이다 ... 어쩜 우리의 인생도 이와 같지 않은가 ? 난 말하고 싶다 "망설이지 말라고 "]
소청도 대청도를 경유하여 동경 124도 53분, 북위 37도 52분에 위치한 백령도에 도착한다.
백령도는 진촌리 조개무지(말등패총)에서 신석기 시대의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되어 일찍부터 이곳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을 볼 수 있으며, 삼국시대에 백령도를 하얀 날개를 펴치고 날아가는 따오기의 형상을 하고 있어 고니곡(鵠)자를 써서 곡도(鵠島)라고 하였으며 신라진성여왕 때 당나라로 가던 사신이 풍랑을 만나 곡도에서 10여 일을 머물렀던 것이 계기가 되어 후 삼국시대에는 당나라로 통하는 중요한 해상무역의 요충지였기에 백령도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해전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고려 태조 때 명장이었던 유 필금 장군이 무고를 당해 곡도로 유배를 당하기도 하였다. 조선 세종 때 편찬된 《고려사》에 의하면 고려는 곡도는 흰백자에 날개령자를 써러 백령(白翎)으로 개명하고 진을 설치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1051년 백령진에 화재가 발생하여 백령진장 최성도와 부장 최숭망을 처벌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부터 백령도에 진을 설치하고 진장과 부장을 두어 군사적 요충지로 관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백령진을 설치하였고 1894년(고종 31년) 폐지되었다. 역사적으로 백령도는 고려시대부터 유배지로 이용되었다 한다.
지금은 인구 4800여명이 거주하는 우리나라의 8번째 큰섬으로 인천항에서 서북 방향으로 191km위치 자리하고 있으나 북한의 장산곳에서 14km의 거리에 위치한
매우 가까운 섬이다.
육지에서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 위치 하였으면서도 먼 해상로를 이용해야 하는 현실에
답답함이 밀려든다.
백령도의 서쪽 대청도 방향을 따라 답사를 시작 했다.
심청각이 위치한 자리에서 날이 맑은 날은 북한의 장산곳이 보인다고 하는데 해상의 안개 때문에 장산곳은 보이지 않았다.
눈 먼 아비를 위해 공양미 삼백석에 인당수에 몸은 던져야 했던 효녀 심청
우리 나라 국민모두에게 너무 익숙한 민속설화지만 ..
나에게 좀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설화다.
국민학교 6학년때 도내 연극대회에 학교 대표로 심봉사 역을 맞아 출전한적이 있기때문이다.
그 당시 전교생중 가장 아리따운 여학생이 심청이를 했었는데 마지막 부분 심 봉사가 눈을 뜨는 장면에서 " 청아! 내 딸 청아 네가 정말 내딸 청이란 말이냐 ?"
하며 왈칵 포응을 하는 장면에서 뭇 남학생들의 부럼을 사기도 했던 시절이 있어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 여학생도 어엿한 가정주부가 되어 있겠지만.. 추억이 되살아 났다.
해상의 기후가 변화무쌍하다
금방 안개가 끼었다 싶으면 해풍에 밀려 사라지곤 했다.
바다가 높다 싶으면 낮아지는 장면이 눈 앞에서 반복되었다.
멀리 대청도에 해상안개로 산 봉우리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2010년 3월26일 우리 해군의 초계함인 천안함이 침몰 국토방위의 젊은 46용사가 순국한지 1주년이 되는 시점이다.
수 많은 의문과 신뢰성없는 정부의 대처능력에 국민들이 울분을 터뜨렸던 안타까운 사건
조국의 국토 방위를 하다 어처구니 없이 순국한 46 용사의 넋을 기리기 위해 천안함이 침몰한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령탑을 세웠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터져오는 분노가 소용돌이처럼 일고 있었다.
"부디 다음 생에 다시 태어 나거든 더 행복한 세상에서 태어 나소서"
" 남북분단이 없는...."
" 그대 소중한 생명 이곳에 바쳤으니 "
"저 물결 또한 더더욱 푸르오"
"그 죽음의 공포앞에서 얼마나 몸부림을 쳤겠소"
"그 꽃같은 젊음을 이곳에 묻었으니 "
"우리의 가슴에 핏 멍울이 들었소"
"우리는 결코 그대들을 잊지 않겠소"
"46 용사들이여 편히 잠드소서 "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야 했던 곳이다.
정우는 말없이 먼 바다만 쳐다보다 조용히 그곳을 내려 왔다.
[연화리 해변에서]
두무진 포구의 야트막한 산자락을 올라 바다를 만나는 순간...
선대암,코끼리바위,형제바위, 장군바위,, ..
작은 한국의 그랜드 캐년을 만나는듯 결경이 펼쳐진다.
오랜 세월 지각 변동이 생기고 ,,, 해풍에 깍기고,, 파도에 까기여 만들어진 절벽의 형상이
감동으로 눈 속을 파고 든다.
검푸른 바다의 향연이다...
붉은색 결정암의 축제처럼 ...
감탄을 연발 했다.
아름답고 웅장함에 주변이 분산해진다.
여기 저기서 환호성이 들린다.
착칵, 착칵 ..
카메라의 셔터소리가 ... 여기 저기서 들렸다.
해넘이에 붉게 물드는 기암 절벽의 아름다움...
그 협곡같은 해안 계곡에서 한참동안 해넘이하는 것을 지켜보다 내려왔다.
전 세계에 두곳,,,
나폴리와 이곳 백령도에 있다는 천연 비행장 사곶해변이다.
약 3mk 길이의 이곳 사곶해변은 규조토로 이루어져 있어 단단한 성질때문에 한때 이곳을 비행장으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이곳 사곶해변을 걸었다..
몽롱한 안개속을 헤집고 걸었다.
해풍에 품속을 헤집고 들어는 바람속을 ...
그렇게 안개속을 걷다보니 어느새 안개가 걷히고 청명한 하늘이 모습을 나타낸다.
피곤한 발을 콩돌 해수욕장에 들러 족욕을 하듯 물에 담근다.
찬 바닷물에 물속에 오랜 있을수 없나보다 ..
다들 발을 담가다간 금새 밖으로 나왔다.
여행은 잠깐의 짬도 행복한 시간이다.
콩돌위에 등을 대고 누웠다.
휴식...
뭐 이런것이 휴식이 아닌가.. ??
[해당화 넘어 심청이 연꽃을 타고 뭍으로 올라다던 연바위가 보인다. 그넘어 대청도.. 그리고 그 사이엔 천안함의 침몰지가 있다.]
칼바위 사곶해변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2010년 10월 목함지뢰를 발견하여 민간인 출입을 통제한다고 해서 잠시 인증 샷을 한후 바로 빠져 나왔다.
백령도의 보리는 아직 푸릇함이 보인다.
이곳 농지가 귀했다고 하나 얼마전 간척사업으로 지금은 자급자족을 하고도 남을 만큼의 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보리 농사가 끝나면 이곳에 메밀을 심는다고 한다.
그래서 백령도에는 메밀을 이용한 음식이 많았던것 같다 ..
백령도는 원래 우리나라에서 14번째로 큰섬이였으나, 간척지 사업으로 지금은 그 크기가 우리나라의 8번째라고 한다..
좀처럼 오기 힘들었던 백령도...
육지에서 가까우면서도 우리에겐 너무 먼 . 백령도...
배를 타고 나오며 .. .
우리는 이야기 한다. .
우리 생전에 통일이 되어 북한땅 구경하고 죽을수 있을까.?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백령도 여행을 여기에서 마무리 한다.
[백령도 사자바위]
광야에서 - 노래를 찾는 사람들
광야에서
노래 노래를찾는사람들
찢기는 가슴안고
사라졌던
이땅에 피울음 있다
부둥킨 두팔에 솟아나는
하얀옷에 핏줄기 있다
해뜨는 동해에서
해지는 서해까지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벌판
우리 어찌 가난하리오
우리 어찌 주저하리오
다시 서는 저들판에서
움켜쥔 뜨거운 흙이여
해뜨는 동해에서
해지는 서해까지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벌판
우리 어찌 가난하리오
우리 어찌 주저하리오
다시 서는 저들판에서
움켜쥔 뜨거운 흙이여
다시 서는 저들판에서
움켜쥔 뜨거운 흙이여
가사 출처 : Daum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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