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솔천의 만추 【고창선운사】
"도솔천을 건너 가을을 만나다."
『전라북도 고창 선운사』
전라북도 선운산 자락에 자리잡은
선운사의 가을은 도솔천에 짙게 물들어
그 가을이 각별하고도 이색적이다.
내가 매년 선운사를 찾는 이유는 누구보다 각별하다.
선운사에는 그리움이 있고 무엇인지 모를
그리움의 눈물이 베어 있기 때문이다 .
그 이유가 특별하거나 별다른 것은 아니다
뭇 사람들이 느꼈던 감성만큼 나에게도
선운사가 안겨주는 감성은 같은 것이다
미당선생이 해방 전 어느 날 가을
아버지의 상(喪)을 치르고 선운사 들머리에 있는
주막에 들려 잘 익은 '꽃술'을 비우고 상심할 적에
마흔 남짓한 주모는 세월 속 미색이오
맛깔진 육자배기를 얼마나 구성지게 부르는지
그 맛깔진 육자배기가 그리워 세월이 흐른 뒤
동구에 주막을 찾아 갔더니만
그 곱디 고운 주모는 전쟁통에 운명을 달리하였다.
이러한 사연이 동구라는 시의 배경되었다.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것만 상기도 남었읍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디다.
선운사에 명물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아기동백이다.
천년기념물 184호로 지전정 동백 숲을 두고
사람들은 봄에 피는 '춘백' 이라고도 하고
'아기동백'이라고도 한다
그것은 선운사의 동백은 여느 동백에 비해
꽃의 크기가 작고 여느 지역에 꽃이 다 지고 난 봄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시인 김용택님는 선운사 동백꽃이란 시(詩)에서
여자에게 버림을 받고 살얼음 낀 선운사 도랑물을
맨발로 건너며 자신을 버리고 가버린 여자 때문에
울지 말자 다짐하며 눈물을 감추다가 선운사 뒷 뜰에
붉게 피어난 동백꽃을 보고 주저앉아 그것도 소리내어
엉엉 울었다며 선운사 핏빛 동백꽃의 애절하고도 슬픈사연을
글로써 남겼다.
글을 읽는 동안 먹먹해지는 마음을
난 선운사에 가면 느낄 수 있다 .
상처받는 사람들이 선운사를 찾는 이유는 이렇게
상처를 치유받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버림받고 천갈래 만갈래 찢겨진 마음의 상처를
이 가을 선운사에 가면 그 메마르고 찢겨진 마음을
치유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미당이 그리워 했던 육자배기가 맛깔스런 주모의 모습,
동백꽃이 떨어지던 날 그 아래서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던 어느 시인의 상처를 어루만져 준 선운사
지금 이 가을 선운사에 가면 그 아련한 그리움을
치유하고도 남을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