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구례 산수유 마을을 찾아서
이른아침부터 매화마을을 들러 섬진강을 따라 하동송림,평사리 최진사댁,구례사성암 그리고 우리의 마지막 목적지인 구례 상위마을에 도착했다.
어제부터 담양을 시작으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아이들과 1박2일동안 함께 즐거운 봄맞이 여행을 마무리 해야하는 시간이다.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서산으로 향하고 산수유마을을 들어가는 입구는 산수유 축제때문인지 차량의 정체가 심각했다.
매화꽃이 엄동설한이 피어난 고고한 자태로 화사하면서 세련된 도시처녀의 모습이였다면 산수유는 분칠도하지 않은 촌스럽지만 수수하고 순박한 미를 간직한
뚝심이 강한 시골 아낙의 모습이다.
올해는 윤달이 들어 산수유도 이제야 막 꽃망울을 열어제치고 봄의 시간속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산수유 꽃은 세번을 핀다고 한다. 꽃망울에서 노오란 봄빛을 담고, 꽃망울이 떠지면 왕관모양의 곁꽃잎이 꽃술처럼 피어난 다음에야 비로소
왕관모양의 꽃잎가지마다 꽃술이 터진다.
산수유의 꽃 색깔이 가장 아름답고 노란빛이 강할때는 곁꽃잎이 떠질무렵이다.
하지만 구례의 산수유꽃은 이제 막 꽃망울을 피우기 시작했으니 올해는 아마도 4월 중순까지는 산수유 꽃을 볼수있지 않을까 싶다.
난 산수유를 보면 아버지가 생각난다.
어린시절 내가 열이 많이 나 몸이 아플때 아버지께서 눈속에 따오신 열매가 바로 산수유 열매였기때문이다.
그래서 학창시절 국어 교과서에 실려있던 김종길의 '성탄제'를 접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었다.
어두운 방안엔 빠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러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藥)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山茱萸) 열매 ----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熱)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聖誕祭)의 밤이었을 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 것이라곤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聖誕祭)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속에 따 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상위 마을 뒷산 지리산자락엔 어제밤 춘설이 내려 하얀 겨울이다.
꽃이피고 열매가 달릴때쯤 산수유 나무는 해묵을 껍질을 벗어내고 새로운 모습으로 이곳에 남아 있으리라 .
아이들은 봄이오는 길목에서 어제 사준 대나무 피리를 불며 논두렁을 걸어도 보고 덤풀속을 바스락 거리며 피어난 새싹을 만져도 보고
산수유꽃이 세번 핀다는 말에 산수유 꽃을 유심히 관찰도 한다.
겨우내 얼었던 계곡물이 봄볕에 녹아 졸졸졸 봄오는 길목으로 마중을 나서고
해는 뉘엿뉘엿 서산을 넘어갈때쯤 섬진강을 따라 봄맞이 여행에 나섰던 우리의 일정도 끝이 났다.
이제 고단한 몸을 어루만지며 집으로 돌아오는길 눈꺼풀은 천근만근 무거운데 아이들이 피곤함에 골아 떨어져
'드르렁' 코를 골아된다
서울로 올라오는길 아이들이 잠이 든 모습을 보며 큰애의 어릴적 사연하나가 떠올랐다.
큰 아들이 어릴적에 아마도 초등학교 3학년 그해 초겨울이였을듯 하다.
공원에서 놀다가보니 할머니들이 빨간 열매를 따서 비닐 봉지에 담는것을 보고 할머니한테 그 열매를 왜 따냐고 물어보니
"몸에 좋은 열매라 다려먹으려 한다." 했던모양이다.
아들은 어린 계집아이 두 동생을 데리고 나무에 올라가 산수유 열매를 따서 주머니마다 가득 넣어가지고 해름판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아들은 자랑스럽게 주머니마다 담아온 붉은 산수유 열매를 꺼내 보여주며
"이거 몸에 좋다고 해서 아빠 줄려고 따왔어!" 하며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 보았다.
아이들의 고사리 같은 손은 차디찬 겨울바람에 얼어 붉은 선홍빛이 역역했다.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는 순간 얼마나 안스러웠던지 아이들의 얼은 두손을 꼭 잡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어느새 그 아들녀석이 이제 그 힘겨운 고3 수험생 생활을 하고 있다.
아비된 자로써 해줄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져 지켜보며 소리없는 응원과 격려를 보낼뿐..
산수유 열매는 그렇게 나에게 많은 추억과 사연을 간직한 열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