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화여행

부처가 누운 두륜산 자락 대흥사에서

緣佑(연우) 2012. 2. 16. 08:00

춘설이 날리던 대흥사에서

 

차에서 내리자 잿빛 하늘에선 춘설이 날렸다.

일행들은 앞을 다투어 걸음을 제촉해 대흥사로 향했다.

난 담배 한대를 피워 물며 김대표의 옷자락을 잡아 끌었다.

" 우린 천천히 가지 "

" 이곳은 천천히 걸어야 제맛이거든 그래야 사진도 찍지 한대 피우고 가자고"

김대표는 대답 대신 씨~익 웃으며 나를 바라보곤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김대표와 수다를 떨며 담배 한개피를  다 피울때 쯤 일행들의 모습은 눈에서 멀어져 갔다.

그때서야 우린  일행들이 걸어간 뒷길를 쫓아  천천히 발길을 옮겼다.

앙상하게 메마른  나목의 가지 가지에 꽃잎이 떨어지듯 나풀 나풀  춘설이 조심스럽게 내려 앉았다.

소리없이 내리는 눈발을 맞으며 들뜬 발걸음을 옮겨 산사로 향했다.

일주문을 지나 대흥사 앞 마당에 들어서자 두륜산 자락에 부처가 편안한 모습으로 단잠을 청하듯 하늘을 향해 누웠다.

 

 

 

 

하늘과 맞닿은 산 능선의 모양이 영락없는 부처가 누운 형상이다.

대흥사는 부처가 누운  두륜산 산자락을 배경으로 오밀 조밀 자리를 잡고 있다.

춘설이 내리는 두륜산 골짜기 대흥사 천변길을 따라 산사로 향하는 길은  오랜 세월을 보낸 고목이 용트림하듯 몸을 뒤틀어 

하늘을 향해 그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대흥사는 해발 706m의 두륜산 북쪽 기슭에 위치한 대한 불교 조계종 22교구의 본사이다.

두륜산은 중국 곤륜산 줄기가 동쪽으로 흘러 백두산을 이루고 백두산에서 산맥이 다시 뻗어내려  백두대간을 이루며  태백산맥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다시 이어진 산줄기가 이곳 두륜산에서 끝을 맺는다.

두륜산은 이런 의미에서 곤륜산과 백두산의 이름 가운데 자를 따서 두륜산(頭崙山)이라 하였는데 일제 잠정기에 들어

전국 지명을 다시 표기하면서 산 이름 륜(崙)자를 바퀴 륜(輪)를 써서 두륜산(頭輪山)으로 바꿔 버렸다고 한다.

두륜산의 원래 이름은 평탄한 지역에 불쑥 솟은 형상을 하고 있어 '한듬'이라 하였는데, 여기서 '듬'이란  이지역의 방언으로 '벼랑'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후 '한'이 한자말인 대(大)자와 결합하여 '대듬'이라 불리우다 대둔산(大屯山)이라 불리워 졌다.

그래서 대흥사의 원래 명칭은 산의 이름을 따서 대둔사였다.

근대 초기 대흥사로 명칭을 바꿔 부르다가 1993년 원래 명칭인 대둔사로 바꿨지만 대흥사란 명칭이 친숙하다는 이유에서

2003년부터 대흥사라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서산대사와 초의선사를 비롯 연담 유일등 저명한 스님들이 머물다 간 대흥사는

국보 제308호인 북미륵암마애여래좌상과 보물급인 서산대사의 사탑,유물을 비롯하여 국보 1점, 보물 8점,지방유형문화재 7점외

다수의 문화재자료를 보유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일주문을 지나기 전 우측에 커다란 송림이 우거져 있고 그 사이 부도 숲에는 서산대사를 비롯한 초의선사,연담,취여,월저,설암,환성,

호암,설봉,풍담, 등의 대종사와 만화, 연해, 영파, 운담, 벽담, 완호 등의 대강사 등 그밖에 고승 대덕들의 부도탑이

대흥사의 역사와 전통을 말해주듯 자리하고 있다.

이들이 조선 중기 이후의  인물이란 점을 감안하면, 부도와 비의 양식 또한 통일신라나 고려시대때 만큼

세련되고 섬세함을 찾아 볼수 없지만 단순하면서 기품이 넘친다.

특히 서산대사의 부도는 기단부와 상륜부의 독특한 장식과 옥개의 낙수면 그리고 처마의 목조건물이  이 시대의 작품에서는 찾아 볼수 없는

특이한 기법으로 고려시대의 양식을 띄고 있다.

 

 

 

 

 

 

 

 

 

 

 

 

 

 

 

 

 

 

 

 

 

 

 

 

 

 

 

 

 

 

 

 

 

 

 

 

 

 

 

 

 

 

 

 

 

 

 

 

 

 

 

 

 

 

 

 

 

 

 

 

 

 

 

 

 

 

 

 

 

 

 

 

 

 

 

 

 

 

 

 

 

 

 

 

 

 

 

 

 

 

 

 

 

 

 

 

 

 

 

 

 

 

 

 

 

 

 

 

 

 

 

 

 [대웅전 전남 유형 문화재 제 296호 ]

 

 

 

 

 

 

 

 

 

 

 

 

 

 

 

[ 대흥사 3층 석탑 보물 제 320호 ]

 

 

 

대흥사의 응진전 앞에  자리하고 있는 삼층석탑은 신라의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가져온 석가여래의 사리를 모신 사리탑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석탑의 형태는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운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탑이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을 따르고 있고, 석재의 결구 수법이 단조롭고 온아하며 기단의 가운데 기둥의 수가 하나로 줄어들고

지붕돌의 밑면이 4단인 것으로 보아 통일신라 시대 후기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1967년 1월 해체 수리시 상층의 기단안 자연 판석위에 놓여있던 높이 12cm의 동조 여래좌상이 발견되었는데

이와 같은 방법으로 안치하는 특징은 연곡사지의 삼층석탑에서도 잘 나타내고 있다.

 

 

 

 

 

 

 

 

 

 

 

 

 

 

 

 

 

 

 

 

 

 

 

 

 

 

 

 

 

 

 

 

 

 

 

 

 

 

 

산사를 내려오는 길

춘설은 난대림의 상록수가 인상적인  대흥사 입구 길목을 덮어 놓았다.

조선 중기 9개의 말사를 거느렸던 사찰을 뒤돌아보며 언제이고 꽃이 피고 단풍이 들면 다시 찾아 오겠다는 

기약없는 독백의 약속을 뒤로하고 다음 답사지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