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그 뒤안길

사천 - 다도(茶道)예절 여행

緣佑(연우) 2011. 12. 2. 00:17

다도는 일반적으로 차를 마시는 예절을 의미한다.

8세기 중엽인 760년  중국의 문인 육우 (733년~804년)가 차를 만드는 법과 예절을 정리하여 저서한 다경이라는 책에서

그 역사가 시작된다고 한다.

육우는 복주 경릉군(지금의 후베이성 텐먼시) 출신으로 3살때 버려졌으나, 중국 용개사의 주지인 지적선사가 그를 거두어 자신의 성을 따

육(陸)으로 하고 이름은 점괘에서 나타나는대로 우(羽:깃우)를 써 육우라 불리어 졌다. 지적선사는 육우가 불경을 익혀 승려가 되기를

원하였지만 육우는 유교에 관심을 두고 학문을 익혔다고 전해진다.

육우는 지적선사가 승려가 되라는 권유를 못이겨 절을 도망나와 극단에서 배우로 살다가 경릉태수 이제물(李濟物)을 만나

학문에 정진하게 되었고 이후 경릉의 사마(司馬) 최국보를 만나 어울리며 정행검덕(情行儉德)을 이상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후 육우는 안사의 난을 피해 강남의 오흥에 암자를 만들고 그곳에서 은거하다 중국 승려인 교연과 친분을 쌓게되고 이때부터

차 산지를 돌아다니며  차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여 다경(茶經)이라는 책 3권을 저서하게 되는데 이 책이 지금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의 차문화와 다도의 근간이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다도 역사는 훨씬 이전으로 알려져 있다.

가야국의 수로왕의 황후 허황옥은 인도 아유타국의 사람으로 인도로 부터 차를 가지고와 가야국에서 재배하여 마셨다고 한다.

삼국시대에도 왕족이나 귀족들이 차를 즐겨마셨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전해지고 있다.

특히 통일 신라시대에는 왕실과 귀족을 비롯해 화랑과. 일반인에게까지 성행하였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억불정책으로 불교에서 성행하던 차문화가 일반인과 차단되면서 우리나라 차문화는 소극적 발전을 해왔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차 문화에서  초의선사(의순)를 빼놓을수 없는데 초의 선사의 차맛이 깊어 신위, 김정희 등이 초의선사를 자주 찾아다는 설이있다.

초의선사는 해남 두륜산에 일지암을 짓고 이곳에서 신위, 김정희등과 다과를 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통영 답사를 마치고 진주로 가는길 사천에 위치한 다자연 차문화센터에서 홍금이 박사님을 모시고 다도에 대한 예절과 그 문화에 대한 강연을 들을수 있는

기회가 주워졌다.

이곳 사천시 곤명면 금성리에 위치한 다자연은 2001년 진양호 땜 보강공사로 마을의 전답 일부가 수몰되었는데 수자원공사에서 만들어준 대체 농지가 자갈과 모래로

척박하여 농사가 힘들어지자 그의 대체사업의 일환으로 지역의 특성과 기후 조건에 맞는 차나무를 재배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해 이상 기온으로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 방풍림의 하지 않은곳의 차나무가 모두 동사하여 지금은 차나무 재배가 매우 힘든 상황이라고 한다.

지금은 임시 방편으로 옥수수를 주변에 심어 올 겨울 방풍역활을 해주기를 기대하지만,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것이 홍금이 박사님의 설명이다.

 

 

 

 

 

 

 

친구와 한시간 정도 먼저 도착해 홍금이 박사님과 담화를 나누며 더 많은 차의 문화를 접할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다과상은 홍박사님이 직접만드신 다과를 준비해 주셨는데 그 정성과 맛이 이루말할 수 없었다.

 

 

 

 

 

 

 

 

강의를 마치고 차밭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작년겨울 동사로 잘려나간 차밭의 풍경이 애처롭다.

가을의 햇살아래 풍요롭기만 한 풍경속의 아픔이다.

 

 

 

 

김대표 내외가 분위기를 잡고 사진을 찍으려는데 조작가의 장난기가 발동한다 .

하지만 앞만 응시해달라는 내 주문에 두내외는 웃음을 참으며 끝까지 모델로써 임무를 완수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또 한장의 추억을 담은 이야기 거리인 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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