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산성,삼년산성을 찾아서
아침부터 빗줄기가 새벽잠을 깨웠다.
청주일대 답사를 하자하고 친구와 함께 길을 나섰다. 빗줄기는 좀처럼 그칠줄 모른다.
대전에서 이한상 교수님과 합류하여 답사할곳 몇몇 지역을 체크하고 부지런히 길을 나섰다.
충북 보은에 위치한 신라의 산성 1500여년 숱한 시간속으로 거슬러 올라가듯 산성에 올랐다.
산성에 오르면 보은군 시내와 주변의 넓은 들판이 그럼처럼 시야에 들어온다.
오랜 세월과 전쟁의 상흔으로 얼룩진 산성의 모습이 그때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는듯 했다. 오랜 세월을 거쳐 왔으면서도 원형에 가까운 산성의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삼년산성은 470년 신라 자비왕 대에 3년에 걸쳐 장정 3천 명을 동원해 공사했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를 겨냥해 한강진출이 용이한 군사적 요충지에 삼년산성을 축성하게 된다.
당시 작은 신라의 인구와 국력을 고려해 볼때 3천명을 동원해 3년동안 쌓았다고 하니 신라입장에서는 실로 대단한 산성이 아닐수 없었다.
면적 22만 6000m2. 사적 235호인 삼년 산성은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으로 알수 있다.
이 산성은 470년(자비왕 13)에 3천명의 군역을 동원해 3년 동안 축성하고
신라는 이곳을 백제를 공격하기 위한 최전방기지로 삼았다고 전하고 있다.
성문(城門)은 보은읍을 내려다볼 수 있는 서쪽 수구(水口) 부근에 있다.
성벽은 주위의 능선을 따라 견고하고 웅대하게 구축하였는데, 높이는 가장 높은 곳이 22m에 달하고, 너비는 5∼8m이며, 전장(全長) 1,680m에 이른다.
성벽의 구축 방법은 내외면 모두 석축으로 수직에 가까운 벽면을 이루게 하였고, 전형적인 협축공법(夾築工法)을 채용하였는데,
특히 이 협축성벽은 토사(土砂)를 전혀 섞지 않고 내부까지 전체를 석축으로 견고하게 구축하였다.
외벽과 내벽 사이가 흙이 아닌 돌로 채워져 그 견고함은 당대에선 찾아볼수 없는 견고함과 정밀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성벽 바깥의 깊은 협곡의 특성을 살려 산 정상을 원형으로 방어진을 구축함으로써 방어선을 최적화 했다.
5세기 후반 고구려,백제, 신라의 접경지역에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은 성을 구축함으로서
고구려와 백제를 견제함과 동시에 200여년 후 한강 이북까지 진출할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하게 되었다고 한다.
성의 둘레를 돌다보면 중간 중간 복원중인 몇몇 구간이 발결할수 있었다.
이 교수님께서는 복원의 기술이 좋아지기도 했지만 너무 현대적 기술과 공법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당시의 고증을 통해서 정확한 복원이 요구된다고 지적하며
실제로 복원을 잘못해 복원물을 철거하고 재 복원하는 헤프닝도 있었다 한다.
성 둘레를 돌아보기는 한시간 정도 소요되며 이곳에선 역사체험장도 함께 운영되고 있어
초등학생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역사체험장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