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화여행

최북단 민통선마을 통일촌에서

緣佑(연우) 2011. 8. 8. 21:15

서부전선 민통선 마을 통일촌에서

 

지리하던 빗방울이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갔지만 남해 먼 바다에서 태풍 '무이파'가 북상 중이란다.

점심때 쯤 사진동호회 사람들 몇분이 일산을 방문하신다 하여 기다리고 있던 참이다.

일산에 모여 친목도 도모하고 호수공원에서 사진도 찍을 예정이 였다.

하지만 찌는 듯한 폭염이 염려되었다.

때가 점심때 인지라 일산 풍동에 위치한 한식집에서 모여 식사를 마치고 의논 끝에 날이 더워

임진각 평화누리로 향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자유로를 달리던 중 문득 민통선에 들어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의견들을 수렴해 민통선안에 본가를 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의 도움으로 서부전선 민통선 안에 자리한 작은 마을 통일촌으로 향했다.

임진각에 도착하니 일산보다는 날이 좋은 편이다.

 

 

임진각 민간인 통제선 관문을 통과하기 위하여 마을의 현지인이 차로 마중나왔다.

우리 일행은 검문소에 신분증을 맡기고 공무용 통행증을 교부받아 민통선 안으로 들어가니

기다리고 계시던 친구의 어머니가 반갑게 맞이 해주신다.

통일촌은 1973년 박정희 대통령이 통일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조성된 50여가구 안밖의 작은 마을이다.

이곳에서 친구의 어머니는 마을사람 몇 사람을 모아 영농조합을 만들어 파주의 특산품인 장단콩을 가공하여 판매하는 사업과

이 마을의 유일한 식당을 운영하신다.

 

 

지역이 민통선 안에 위치한 특성을 고려 한때는 체험학습겸한 운영을 하셨는데

그때 짚으로 만드신 옛날 농기구와 공예품이 있으시다며 안내를 해주셨다.

공예품을 마을 사람들과 직접만드시고 체험학습 교실을 운영하셨지만 지금은 참여도 적고, 운영할 인력도 없어

운영을 못하시는 실정이라고 한다.

그러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우리나라 국민들은 아직 선진국민이 되기에는 멀었다." 는 것이다

그 이유를 여쭤보니  체험 학습을 하고 나면 애써 만드신 자료들이 하나, 둘 없어 진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현대사회의 생활에서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을 아마도 장식용으로 가지고 가는 모양이다.

 

 

전시관에는 제법 많은 옛날 농기구와 공예품이 전시품으로 진열되어

마을 사람들의 수고와 정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친구 어머니께서 무엇에 쓰였던 물건인지 이름을 가르쳐 주셨는데도 몇가지를 빼고는 처음 접하는 것들이다.

 

 

 

세월이 참 많이도 흐른듯하다.

친구의 어머니를 처음 뵌것이 중학교2학년 때로 기억하는데

이젠 이렇게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되어 계시니 세월의 무정함에 안타까움이 앞선다.

친구의 어머니께서 이것 저것을 설명하시는 동안 전시관의 높은 내부 온도로  땀방울이 등줄기에 강을 이루고 있었다.

 

 

 

 

 

 

작가의 고민...

작사는 장독대를 모델로 작품을 담으며 여러 방향의 구도를 잡아 본다 ..

앉잤다 일어섰다..

저리도 많은 수고에 한개의 작품이 나오는 모양이다.

사진에 대해서 무내안인 나에게 그져 낯선 장면이다.

 

 

작가분이 하도 열심히 풍경을 찍길래

나도 한번 찍어 보았다.

작가는 말한다. " 풍경 사진은 하늘과 구름의 형상이  7~80% 먹고 들어 갑니다."

속으로 "아그렇구나" 공감을 했다.

 

통일촌은 휴전선과 직선 거리 4km 안밖에 위치한 마을로 마을 회관에서 북녘땅을 바라보면

남북의 태극기와 인공기가 휘날리는 것을 관측할수 있어 긴장감을 더해주는 마을이다 .

멀리 인공기가 나부끼는 모습이 보인다.

 

 

통일촌에 세워진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시비와 망향제단이 분단의 아픔을 달래고 있다.

언제쯤이나 되어야 이 일번 국도를 타고 평양까지 갈수 있을까

정말 한번 달려보싶은 도로 일번국도 이다.

 

 

통일촌 군내 초등학교 교정

 

 

군내초등학교는 마을안에 위치 작은 학교로 병설유치원을 포함해 교직원 16명에 초등학생 42명 유치원생 12명이 현재의 현황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전교생이 100여명이 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인구의 감소는 이 작은 마을에도 심각한 사회 현상인듯 하다.

기억에 이곳의 학생들은 모두 공부를 잘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초등학교 교정에 핀 상사화와 마을 회관 앞 통일촌 기념탑의 소나무 전경

 

 

 

이곳에 무슨 공사가 있었던 모양이다 .

마을을 돌고 오니 마을회관 주차장에 중장비가 부대를 이루고 있다.

 

 

능소화와 통일촌 교회 종탑.

 

 

고요하고 평화로운 작은마을에 아직 끝나지 않은 휴전의  긴장감을 뒤로하고

민통선을 빠져 나왔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

분단된 조국을 하나로 통일해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중대한 과제가

무겁게 가슴을 짓누르는 여행이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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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몽 - 한지혜

1절 찾아가면 어디론가 떠나버린 뒤
애써 눈물 참아가며 또다시 길 떠나네
님도 나를 찾아갔나? 엇갈린 우리사랑
꿈에라도 보고싶어 깊은 잠 독촉하네
나 ~ ~ ~ ~ ~ ~ ~ ~

2절 언젠가는 만나겠지 내님 보겠지
이아픔도 피해가네 우리 만날 그날위해
꿈에라도 피울거야 못잊을 우리사랑
난 너에게 달려가고 넌 내게 달려오네
나 ~ ~ ~ ~ ~ ~ ~ ~